해가 갈수록 시간이 빨리 갑니다: 시간이 빨라진 게 아니라 표시가 사라진 것입니다
달력을 넘기려다 부엌에 선 채로 손이 멈췄습니다. 지난 넉 달이 거의 빈칸이었거든요. 시간이 빨라진 걸까요, 표시가 사라진 걸까요.
자녀의 독립, 빈 둥지, 달라진 부부 관계, 나이 듦, 부모의 노화, 그리고 “나는 이제 누구인가”라는 질문. 40~60대가 마주하는 변화와 감정을 함께 이야기합니다.
글 16편
달력을 넘기려다 부엌에 선 채로 손이 멈췄습니다. 지난 넉 달이 거의 빈칸이었거든요. 시간이 빨라진 걸까요, 표시가 사라진 걸까요.
어머니 병실 보호자 침대에서 새벽 세 시에 떠오른 문장입니다. 부끄러워 삼켰던 그 질문이 실제로 무엇을 요구하는지 봅니다.
치과 대기실에서 제 이름이 불렸는데 한 박자 늦게 일어섰습니다. 엄마로, 사모님으로, 고객님으로 불린 하루의 끝에서요.
화요일 오전 열한 시, 단톡방에 평일 낮 카페 사진이 올라왔습니다. 부러움과 안도가 같이 오던 그 저녁을 들여다봅니다.
무를 썰던 손 위로 눈물이 났고, 딸은 엄마 갱년기지 하고 물었습니다. 그 한마디가 덮어버린 이 년 치 사건들을 꺼내봅니다.
혼자 병원에 다녀온 날, 딸이 약봉지를 보고 왜 말 안 했냐고 물었습니다. 사랑에서 나온 그 마음이 무엇을 좁히는지 봅니다.
새 휴대폰을 사러 가서 같은 걸 세 번 물었고, 세 번째에는 목소리가 작아졌습니다. 정말 나이 때문이었을까요.
병원 복도 의자에서 형제 셋이 마주 앉았습니다. 계산은 다 맞았는데 왜 죄책감만 남았는지 들여다봅니다.
후배에게 넘길 인수인계 폴더를 정리하다 손이 멈췄습니다. 홀가분함과 밀려나는 기분이 왜 같이 오는지 들여다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