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 속 얼굴이 낯설게 느껴질 때
불편한 건 주름이 아닙니다. 안의 나와 밖의 나가 어긋나는 감각입니다.
거울 속 얼굴이 낯설게 느껴질 때
엘리베이터 거울에 비친 얼굴을 보고 잠깐 멈칫한 적이 있으신가요. 사진 속의 나를 보고 “내가 저렇게 나왔나” 싶었던 적은요.
마음속 내 모습은 대체로 십 년쯤 전에 멈춰 있습니다. 그런데 거울은 오늘을 보여줍니다. 그 간격이 갑자기 눈에 들어오는 날이 있습니다.
낯설음의 정체
이 순간이 불편한 이유는 주름 자체가 아닙니다. 안과 밖이 어긋나는 감각입니다.
안쪽의 나는 여전히 궁금한 것이 많고, 하고 싶은 것도 있고, 어떤 날은 스무 살 같기도 합니다. 그런데 바깥의 나는 누가 봐도 중년입니다. 그리고 세상은 바깥을 보고 나를 대합니다.
나는 그대로인데, 사람들이 나를 다르게 대한다.
이 어긋남이 나이 듦에서 가장 견디기 어려운 부분이라는 이야기를 많은 분이 합니다.
특히 여성에게 더 무겁게 오는 이유
솔직하게 짚고 가면, 우리 사회는 여성의 가치를 외모와 젊음에 오래 묶어왔습니다. 그래서 나이가 드는 일이 단순한 변화가 아니라 가치가 줄어드는 일처럼 경험되기 쉽습니다.
이건 개인이 예민해서가 아닙니다. 오랫동안 학습된 시선이 안으로 들어와 자기 시선이 된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 거 신경 쓰지 마”라는 말은 별로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신경 쓰이는 게 당연한 구조 속에 살고 있으니까요.
안 보이는 사람이 되는 경험
중년 이후 여성들이 자주 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 순간부터 사람들이 나를 지나친다는 것입니다. 가게에서 늦게 응대받고, 대화에서 자연스럽게 빠지고, 길에서 아무도 눈을 마주치지 않습니다.
이건 착각이 아니라 실제로 일어나는 일입니다. 그리고 꽤 아픕니다. 주목받고 싶어서가 아니라 존재가 흐려지는 느낌이기 때문입니다.
보이지 않게 된 것은 남의 눈에 비친 나입니다. 내가 없어진 것이 아닙니다. 이 구분이 되면 흔들림이 조금 줄어듭니다.
받아들인다는 게 포기는 아닙니다
“나이 드는 걸 받아들여라”는 말은 자주 꾸미지 말고 조용히 있으라는 말처럼 들립니다. 그건 받아들임이 아닙니다.
받아들인다는 것은 이런 쪽에 가깝습니다.
-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
- 그 변화가 내 가치를 정하지 않는다고 정하는 것
- 그러면서도 하고 싶은 것은 계속하는 것 — 염색을 하든 안 하든, 운동을 하든, 새 옷을 사든
즉 꾸미는 것을 그만두는 게 아니라, 누구를 위해 꾸미는지를 바꾸는 것입니다. 남의 시선을 통과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거울 속의 내가 마음에 들기 위해서요.
몸을 대하는 태도 바꾸기
이 시기에 도움이 되는 전환이 하나 있습니다. 몸을 보여지는 것에서 쓰는 것으로 옮기는 것입니다.
거울 앞에서 “어떻게 보이나”를 묻는 대신, “무엇을 할 수 있나”를 묻는 겁니다. 오늘 오천 보를 걸었고, 손주를 안아 올렸고, 김장을 했습니다. 이건 외모와 상관없이 몸이 해낸 일입니다.
이 전환이 중요한 이유는, 보여지는 것은 계속 나빠지는 방향으로만 가지만 쓰는 것은 노력하면 나아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육십에 처음 수영을 배운 사람은 오십보다 잘 헤엄칩니다.
얼굴에 남은 것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덧붙이겠습니다.
주름은 시간이 지나서 생기기도 하지만, 어떻게 지냈는지에 따라 자리가 달라집니다. 많이 웃은 사람은 눈가에 생기고, 많이 걱정한 사람은 미간에 생깁니다.
거울을 볼 때 없애야 할 것만 찾는 대신, 그 자리가 어디에 생겼는지 한 번 보셔도 좋겠습니다. 거기에는 지나온 시간이 적혀 있습니다.
요즘 내 몸이 해낸 일 중에 고마운 것 하나를 꼽는다면요?
나는 누구의 시선을 기준으로 나를 보고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