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떠난 뒤 집이 조용해졌다 — 빈 둥지의 허전함에 대하여
기다려온 날이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오니 허전했습니다. 아이가 나갈 때 한꺼번에 사라지는 네 가지가 있기 때문입니다.
집이 조용해진 첫날
아이 방을 정리하다가 침대에 앉아버렸습니다. 벽에는 아직 뗄까 말까 고민 중인 스티커가 붙어 있고, 서랍에는 두고 간 물건들이 남아 있었습니다.
이사 짐을 옮길 때는 정신이 없어서 아무 생각도 안 났습니다. 그런데 다음 날 아침, 밥을 세 그릇이 아니라 두 그릇 푸면서 알았습니다. 이제 정말 조용해졌구나.
이상한 건 그다음이었습니다. 저는 이 날을 기다려왔다고 생각했거든요. 아이 걱정 없이 늦잠도 자고, 여행도 가고. 그런데 막상 오니까 허전했습니다. 그리고 그 허전함이 조금 부끄러웠습니다. 다 큰 자식 독립시켜 놓고 왜 이러나 싶어서요.
허전함의 정체
이 감정에는 이름이 있습니다. 흔히 빈 둥지 증후군(empty nest syndrome)이라고 부릅니다. 다만 여기서 분명히 해둘 것이 있습니다. 이것은 의학적 진단명이 아닙니다. 병이 아니라, 삶의 큰 변화 앞에서 자연스럽게 겪는 적응 과정을 가리키는 표현입니다.
그런데 왜 이렇게 크게 느껴질까요. 아이가 나간 것뿐인데요.
사실 한 번에 여러 가지가 함께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역할 — 매일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이 있었다는 감각
구조 — 하루의 시간표. 아침을 언제 차리고 몇 시에 문이 열리는지
소음 — 집 안을 채우던 생활의 기척
미래의 이야기 — “이 아이가 어떻게 될까” 하고 그려보던 앞날
보통 우리는 이 중 하나만 잃어도 흔들립니다. 그런데 아이의 독립은 이 네 가지를 한꺼번에 가져갑니다. 그러니 허전한 것이 당연합니다. 이건 예민한 게 아니라 상실이 맞습니다.
축하와 슬픔이 같이 오는 일
이 시기가 특히 어려운 이유가 하나 더 있습니다. 슬퍼할 자리가 없다는 것입니다.
주변에서는 축하한다고 합니다. 실제로 축하할 일이 맞습니다. 아이가 잘 자라서 자기 삶을 시작한 것이니까요. 그래서 우리는 슬픔을 꺼내지 못합니다. 슬픔을 말하면 감사를 모르는 사람처럼 보일까 봐요.
이렇게 사회적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슬픔을 심리학에서는 인정받지 못한 애도(disenfranchised grief)라고 부릅니다. 겉으로 표현할 자리가 없는 슬픔은 사라지지 않고 안으로 가라앉습니다. 그러다 엉뚱한 순간에 올라옵니다. 아이 방을 지나갈 때, 마트에서 아이가 좋아하던 과자를 볼 때요.
그러니 첫 번째로 해야 할 일은 간단합니다. 기쁜 것과 슬픈 것이 동시에 있어도 된다고 자신에게 허락하는 것입니다. 둘 중 하나를 골라야 하는 게 아닙니다.
부부 사이에 남는 것
아이가 나가면 부부만 남습니다. 그런데 오랫동안 두 사람의 대화가 대부분 아이에 관한 것이었다면, 이 시기에 어색함이 찾아옵니다.
“우리 무슨 얘기를 했었지?” 하는 순간이요.
이건 사이가 나빠서가 아닙니다. 아이는 오랫동안 두 사람 사이의 공통 화제이자 공동 과제였습니다. 그 과제가 끝난 것입니다. 그래서 이 시기에는 새로운 공통점을 의도적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같이 하는 산책, 같이 보는 드라마, 같이 다니는 배움 같은 것들이요.
거창할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아이 이야기 말고 다른 이야기를 할 시간이 일주일에 몇 번은 있어야 합니다.
이 시기를 지나가는 몇 가지 방법
1. 아이 방을 급하게 치우지 않기
반대로 몇 달째 그대로 두는 것도 마음이 계속 그 자리에 머물게 합니다. 시간을 두고 조금씩 바꾸되, 언젠가는 내 공간으로 만들어보세요. 서재든, 운동하는 방이든, 재봉틀 놓는 방이든요.
2. 연락의 규칙을 함께 정하기
매일 확인하고 싶은 마음과 아이의 독립 사이에서 갈등이 생깁니다. “일요일 저녁에 통화하자”처럼 정해두면 서로 편합니다. 정해진 연락은 기다림을 줄이고, 아이도 부담을 덜 느낍니다.
3. 하루의 구조를 다시 세우기
아이 시간표가 사라진 자리에 아무것도 두지 않으면 하루가 흐물흐물해집니다. 아침 산책, 정해진 식사 시간, 일주일에 한 번 나가는 자리. 구조가 기분을 붙잡아 줍니다.
4. 미뤄둔 것을 꺼내기
“아이 대학 가면 하려고 했던 것”이 있으셨을 겁니다. 이제 그 목록을 꺼낼 때입니다. 처음에는 낯설고 시시하게 느껴질 수 있는데, 그건 오래 안 써서 그렇습니다.
언제 도움을 청해야 할까
대부분의 허전함은 몇 달에 걸쳐 서서히 자리를 잡습니다. 다만 다음과 같다면 전문가와 이야기해보시는 편이 좋습니다.
- 기분이 가라앉은 상태가 2주 이상 거의 매일 이어진다
- 잠과 식욕이 눈에 띄게 흐트러졌다
- 사람을 만나거나 외출하는 일을 계속 피하게 된다
- 술이 늘었다
중년기의 우울감은 “원래 이 나이엔 다 그렇다”는 말에 가려지기 쉽습니다. 나이 탓으로 넘기지 마시고, 한 번쯤 확인해 보시길 권합니다.
마지막으로
아이가 떠난 집이 조용한 건, 그동안 그 집이 시끄러울 만큼 잘 살아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조용함이 익숙해지기까지는 시간이 걸립니다. 그 시간 동안 허전한 것은 잘못이 아닙니다.
아이를 키우는 동안 가장 오래 미뤄두었던 나의 일은 무엇인가요?
그중 이번 달에 시작해볼 수 있는 것이 하나 있다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