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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년의 마음

평생 가족을 위해 살았는데, 나는 이제 누구인가

평생 가족을 위해 살았는데, 나는 이제 누구인가

“뭐 하는 거 좋아하세요?”라는 질문에 답이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취향은 사라진 게 아니라 오래 쓰지 않아 굳은 것이었습니다.

“취미가 뭐예요?”라는 질문 앞에서

모임에서 처음 만난 사람이 물었습니다. “평소에 뭐 하시는 거 좋아하세요?”

저는 잠깐 멈췄습니다. 답이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좋아하는 것이 없어서가 아니라, 좋아하는 것을 생각해본 지가 너무 오래돼서였습니다.

집에 오는 길에 계속 그 질문이 따라왔습니다. 나는 뭘 좋아하지. 나는 뭘 하고 싶지. 삼십 년 동안 제 하루는 누가 무엇을 필요로 하는가로 짜여 있었습니다. 남편의 출근, 아이들의 학교, 시부모님의 병원. 그 질문에는 능숙하게 답할 수 있었는데, “너는 뭘 원하니”에는 답이 없었습니다.

내가 아니라 역할이 나를 설명해왔다

우리는 대개 역할로 자신을 설명합니다. 누구의 엄마, 어느 회사의 무슨 팀장, 누구의 아내. 이 설명은 편리하고, 대부분의 시기에 잘 작동합니다.

문제는 역할이 끝날 때입니다. 아이가 독립하고, 퇴직을 하고, 부모님을 보내드리고 나면 그 설명이 통째로 비어버립니다. 그러면 이런 질문이 올라옵니다.

나는 이제 누구인가.

이 질문은 위기처럼 느껴지지만, 사실은 발달 과제에 가깝습니다. 정체성을 다시 세우는 일은 청소년기에만 일어나는 게 아닙니다. 심리학자 에릭 에릭슨(Erik Erikson)은 사람이 평생에 걸쳐 여러 단계의 심리적 과제를 지난다고 보았고, 중년기의 과제로는 생산성—즉 나를 넘어서 무언가를 키우고 남기는 일—과 그 반대편의 침체 사이의 균형을 이야기했습니다.

바꿔 말하면, 지금 느끼는 흔들림은 뭔가 잘못돼서가 아니라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중이라서 생기는 것일 수 있습니다.

“이제 와서 무슨”이라는 말이 하는 일

이 시기에 가장 자주 등장하는 문장이 있습니다.

“이 나이에 무슨.” “이제 와서 시작해봤자.” “그런 건 젊었을 때 했어야지.”

이 문장들은 겉으로는 현실적인 판단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하는 일은 시도를 미리 막는 것입니다. 시도하지 않으면 실패도 없으니까요. 그러니까 이 말들은 사실 자신을 보호하려는 말입니다.

보호는 필요합니다. 다만 그 보호가 삼십 년째 계속되고 있다면, 한 번쯤 물어볼 만합니다. 지금 내가 지키고 있는 건 무엇인가.

바꿔 물어보기

“이 나이에 이걸 시작해도 될까?” 대신
“이걸 안 하고 십 년 뒤에 있는 나는 어떤 기분일까?”

없어진 게 아니라 오래 안 써서 굳은 것

좋아하는 게 없다고 느끼는 분들께 자주 드리는 말씀이 있습니다. 취향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다만 오래 쓰지 않으면 굳습니다.

수십 년 동안 매일 남의 필요를 먼저 살펴온 사람은, 자기 욕구를 알아차리는 감각이 무뎌집니다. 이건 성격이 아니라 훈련의 결과입니다. 그리고 훈련으로 무뎌진 것은 훈련으로 되살릴 수 있습니다.

다만 순서가 있습니다. 처음부터 “내 인생의 소명”을 찾으려 하면 대부분 실패합니다. 너무 크기 때문입니다. 작은 것부터 시작하는 편이 훨씬 낫습니다.

  • 싫은 것부터 적기. 좋아하는 걸 모를 때는 싫은 걸 적는 게 쉽습니다. 싫은 것의 반대편에 대개 단서가 있습니다.
  • 하루 30분의 자리 만들기. 이 시간에는 누구를 위한 일도 하지 않습니다. 처음엔 죄책감이 들 수 있습니다. 그 죄책감도 오래된 습관입니다.
  • 세 번 해보고 판단하기. 첫 시도는 대체로 어색합니다. 어색함을 재미없음으로 오해하지 마세요.
  • 몸을 쓰는 것 하나는 포함하기. 걷기든 수영이든. 마음의 변화는 자주 몸에서 시작됩니다.

“헛산 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 때

이 시기에 자주 찾아오는 또 하나의 생각이 있습니다. 지난 삼십 년을 돌아보며 “나는 뭘 했나” 싶어지는 순간이요.

그런데 이 계산은 처음부터 공정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자신의 삶을 평가할 때 눈에 보이는 성취만 셉니다. 직함, 자격증, 돈. 그런데 우리가 실제로 한 일의 대부분은 세어지지 않는 것들이었습니다.

누군가가 아플 때 옆에 있었던 시간, 매일 차려낸 밥, 아이가 무너지려 할 때 붙잡아준 순간들. 이런 것들은 이력서에 쓸 수 없어서 없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사실은 누군가의 삶 전체가 그 위에 세워졌습니다.

지금 필요한 건 지난 시간을 부정하는 게 아니라, 그 시간을 인정한 뒤 다음 장을 여는 것입니다. 둘은 다른 일입니다.

다음 문장을 스스로 쓰기

이 시기를 지나가는 분들께 권하고 싶은 연습이 있습니다.

“나는 ○○의 엄마입니다” 뒤에 문장을 하나 더 붙여보는 것입니다. 그 문장에는 다른 사람이 등장하지 않아야 합니다.

“나는 아침 산책을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나는 요즘 도서관에서 일본어를 배우고 있습니다.”
“나는 사람들 이야기 듣는 걸 잘하는 사람입니다.”

처음엔 어색하고 낯 뜨거울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문장이 하나 생기면, 둘째 문장은 조금 더 쉽게 나옵니다. 정체성은 선언이 아니라 쌓인 문장으로 만들어집니다.

오늘의 마음 질문

다른 사람이 등장하지 않는, 나에 대한 문장을 하나 쓴다면 무엇일까요?
그 문장이 사실이 되려면 이번 주에 무엇을 하면 될까요?

오늘의 마음 질문에 답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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