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가 멀어졌을 때 — 관계는 끝나는 게 아니라 모양이 바뀝니다
싸운 적도 없는데 어느새 명절 안부만 남았습니다. 원인을 찾을 수 없어서 결국 나에게서 원인을 찾게 되는 이 멀어짐에 대하여.
어느 날 문득, 연락이 뜸해졌다는 걸 알게 될 때
싸운 적도 없습니다. 서운한 일이 있었던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먼저 연락하는 쪽은 늘 나였고, 답장은 점점 짧아졌고, 이제는 명절 안부만 남았습니다.
이런 멀어짐이 더 어렵습니다. 사건이 있었으면 원인을 찾아 풀어보기라도 할 텐데, 아무 일도 없었기 때문에 원인을 찾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결국 자신에게서 원인을 찾습니다. 내가 재미없어졌나. 내가 뭘 잘못했나.
관계가 끝나는 게 아니라 모양이 바뀌는 것
먼저 사실 하나를 놓고 시작하겠습니다. 대부분의 우정은 끝나는 게 아니라 옅어집니다.
사회학과 심리학 연구들이 공통적으로 지적하는 점이 있습니다. 사람이 가깝게 유지할 수 있는 관계의 수에는 한계가 있고, 그 자리는 삶의 시기에 따라 계속 바뀐다는 것입니다. 학교 때는 매일 보는 친구가 자리를 차지하고, 아이를 키울 때는 같은 처지의 사람들이 그 자리에 들어옵니다.
즉 멀어짐의 상당 부분은 애정이 줄어서가 아니라 접촉이 줄어서 생깁니다. 우정은 감정보다 빈도로 유지되는 면이 크기 때문입니다.
매일 보던 사이가 일 년에 한 번 보는 사이가 되었다고 해서, 그 사람이 나를 덜 좋아하게 되었다는 뜻은 아닙니다. 다만 그 관계를 지탱하던 구조가 사라진 것입니다. 같은 학교, 같은 동네, 같은 아이 학년 같은 것들이요.
그런데 왜 이렇게 아플까
이유가 없지 않습니다.
첫째, 설명이 없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이유를 모르는 상실을 가장 힘들어합니다. 이유가 없으면 마음은 스스로 이유를 만들어내는데, 대개 자기 자신을 원인으로 지목합니다.
둘째, 공유된 기억이 사라지는 느낌 때문입니다. 오래된 친구는 내 과거를 기억해주는 사람입니다. 스무 살의 나, 결혼 전의 나를 아는 사람. 그 사람과 멀어지면 내 인생의 한 시기가 통째로 증인을 잃는 느낌이 듭니다.
셋째, 남은 쪽이 되는 경험이기 때문입니다. 멀어짐에는 대개 먼저 놓은 쪽과 나중에 알아차린 쪽이 있습니다. 나중에 알아차린 쪽은 선택당한 느낌을 받습니다. 그 감각이 자존감을 건드립니다.
확인해볼 만한 것과 놓아도 되는 것
모든 멀어짐을 그냥 받아들이라는 말은 아닙니다. 다만 순서가 있습니다.
1단계 — 한 번은 분명하게 다가가 보기
“요즘 어때?” 같은 애매한 안부 말고, 구체적으로 제안해봅니다. “다음 주 목요일 점심 어때? 그 국수집 가자.” 구체적인 제안은 상대가 답하기 쉽습니다. 그리고 답을 보면 상황이 어느 정도 보입니다.
2단계 — 두세 번의 흐름을 보기
한 번 거절은 정말 바빠서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몇 차례 이어지는 흐름은 신호에 가깝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건 상대를 원망하지 않는 것입니다. 마음의 방향이 바뀌는 데 잘못이 필요한 건 아닙니다.
3단계 — 관계의 등급을 조용히 조정하기
‘절친’에서 ‘아는 사이’로 내려간다고 관계가 끝나는 건 아닙니다. 다만 내가 기대하는 정도를 바꾸는 것입니다. 기대를 조정하면 서운함이 줄어듭니다. 이건 포기가 아니라 정확해지는 일입니다.
내가 먼저 멀어지고 있었을 가능성
한 가지 더 살펴볼 것이 있습니다. 관계가 옅어질 때 우리는 대개 상대가 멀어졌다고 느끼지만, 실제로는 양쪽이 조금씩 물러선 경우가 많습니다.
서운한 일이 한 번 있으면 우리는 다음번에 조금 덜 연락합니다. 상대도 그걸 느끼고 조금 덜 연락합니다. 누구도 결심하지 않았는데 거리는 벌어집니다. 이걸 알아차리면, 적어도 “나만 버려졌다”는 이야기에서는 벗어날 수 있습니다.
비어버린 자리를 어떻게 할까
중년 이후에 새 친구를 사귀는 일이 어렵게 느껴지는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어릴 때 우정은 반복된 우연에서 생겼습니다. 매일 같은 교실에 있고, 같은 시간에 밥을 먹으면서요. 어른이 되면 그 우연이 사라지고, 관계를 만들려면 의도적으로 시간을 내야 합니다.
그래서 방법도 달라집니다.
- 정기적으로 반복되는 자리를 만드는 편이 낫습니다. 일회성 모임보다 매주 같은 시간에 하는 운동, 공부, 봉사 쪽이 관계로 이어질 확률이 높습니다.
- 친구를 만들려고 나가기보다, 하고 싶은 일을 하러 나가는 편이 편합니다. 관계는 대개 부산물로 생깁니다.
- 오래 연락 안 한 사람에게 연락하는 건 생각보다 환영받습니다. 사람들은 “이제 와서 연락하면 이상하겠지”라고 생각하지만, 받는 쪽은 대체로 반가워합니다.
마지막으로
멀어진 친구를 떠올리면 여전히 마음 한구석이 서늘할 수 있습니다. 그 감정을 억지로 정리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건 그 관계가 진짜였다는 뜻이니까요.
다만 이렇게 생각해볼 수는 있습니다. 그 사람은 내 인생의 어떤 구간을 함께 걸어준 사람입니다. 구간이 끝났다고 해서 함께 걸었던 시간이 없어지지는 않습니다.
지금 떠오르는 그 사람과 나는, 어떤 시절을 함께 지나왔나요?
그리고 그 시절의 나에게 그 사람은 어떤 존재였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