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를 만나면 왜 그때 그 자리로 돌아갈까
회사에서는 팀을 이끄는 사람이 본가에만 가면 열다섯 살처럼 발끈합니다. 가족은 우리를 가장 오래된 버전으로 기억합니다.
다 큰 어른인데, 형제를 만나면 그때로 돌아갑니다
회사에서는 팀을 이끌고, 집에서는 부모 노릇을 하는 사람이 명절에 친정이나 본가에 가면 이상한 일이 벌어집니다.
말수가 줄어들고, 언니 눈치를 보고, 동생이 던진 한마디에 열다섯 살처럼 발끈합니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생각합니다. 내가 왜 저기서는 저럴까.
가족은 옛날 자리를 그대로 보관합니다
가족은 우리를 가장 오래된 버전으로 기억합니다. 그리고 그 기억에 맞춰 대합니다.
맏이 — 책임지는 사람 · 둘째 — 눈치 보는 사람 · 막내 — 챙김받는 사람 · 아픈 적 있던 아이 — 계속 걱정받는 사람 · 공부 잘하던 아이 — 계속 기대받는 사람
문제는 이 자리가 스무 살에 멈춰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동안 자랐는데, 가족 안에서의 배역은 갱신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 방에 들어가는 순간, 오래된 대본이 자동으로 재생됩니다. 내가 고른 게 아니라 방이 시킨 것에 가깝습니다.
부모의 인정을 두고 벌어지는 오래된 경쟁
형제 사이의 갈등을 들여다보면, 겉으로는 돈이나 제사나 병간호 이야기인데 밑에는 다른 게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엄마는 누구를 더 좋아했나.
이 질문은 어릴 때 답을 못 받은 채로 남아 있다가, 어른이 되어 다른 형태로 올라옵니다. “왜 나만 이렇게 해야 해?”라는 말 안에는 사실 “왜 나는 덜 사랑받았나”가 들어 있기도 합니다.
부모가 나이 들고 돌봄이 필요해지는 시기에 형제 갈등이 유난히 커지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부모라는 자원이 줄어들면서 오래된 경쟁이 다시 켜지는 것입니다.
공평은 애초에 불가능합니다
형제 사이에서 “공평하게”는 거의 언제나 실패합니다. 재는 자가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입니다.
- 누구는 시간으로 잽니다 — 내가 더 자주 갔다
- 누구는 돈으로 잽니다 — 내가 더 많이 냈다
- 누구는 마음으로 잽니다 — 내가 더 걱정했다
- 누구는 거리로 잽니다 — 나는 멀리 살아서 못 갔다
각자 자기가 많이 낸 항목으로 계산합니다. 그래서 모두가 자기가 더 많이 했다고 느낍니다. 모두의 계산이 다 맞습니다. 자가 다르니까요.
그래서 해볼 수 있는 것
1. 공평 대신 역할 나누기
“똑같이”를 목표로 하면 싸움이 됩니다. 대신 각자 할 수 있는 걸 나눕니다. “나는 병원 모시고 가고, 너는 돈을 대고, 너는 주말에 전화” 식으로요. 같은 양이 아니라 각자 가능한 것으로요.
2. 어른 대 어른으로 말하기
옛날 대본이 재생되려 할 때 알아차리는 게 반입니다. “지금 나 열다섯 살처럼 반응하고 있네” 하고 속으로 한 번 짚으면, 그다음 문장이 달라집니다.
3. 부모 앞에서 판정받으려 하지 않기
형제 갈등을 부모에게 가져가면 대부분 나빠집니다. 부모는 어느 편도 들 수 없고, 결국 모두가 상처받습니다. 형제 문제는 형제끼리가 원칙입니다.
4. 기대를 사실에 맞추기
평생 책임을 안 지던 동생이 갑자기 나서기를 기대하면 매번 실망합니다. 그 사람은 그런 사람입니다. 인정하면 화가 줄어듭니다. 포기가 아니라 사실에 맞추는 것입니다.
거리를 두어도 괜찮습니다
노력해도 만나면 상처만 남는 관계라면, 거리를 두는 것도 선택입니다. 형제라는 이유만으로 모든 것을 견뎌야 하는 건 아닙니다.
다만 완전히 끊기 전에 한 번쯤 생각해보셨으면 합니다. 부모가 떠난 뒤, 내 어린 시절을 기억하는 사람은 그들뿐이라는 것을요. 그 사실이 관계를 견디는 이유가 될 수는 없지만, 서두르지 않을 이유는 됩니다.
가족 안에서 나에게 주어진 오래된 배역은 무엇인가요?
지금의 나는 그 배역과 얼마나 다른 사람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