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에게 고맙다는 말 한마디를 왜 이렇게 기다릴까
더 잘해서 인정받으려는 시도는 거의 실패합니다. 기준이 같이 올라가기 때문입니다.
고맙다는 말 한마디를 왜 이렇게 기다릴까
가족을 위해 한 일에는 대개 감사가 따라오지 않습니다. 매일 차린 밥, 챙긴 약, 미리 사둔 계절 옷, 조용히 처리한 은행 일.
그런데 어느 날 문득 서운해집니다. 그리고 그 서운함이 부끄럽습니다. 내 가족한테 고맙다는 말을 바라다니.
이 마음은 유치한 게 아닙니다. 사람에게 꽤 근본적인 필요입니다.
인정은 사치가 아니라 필요입니다
사람은 자기가 어떤 사람인지를 혼자서는 확인할 수 없습니다. 거울이 필요하듯 다른 사람의 반응이 필요합니다.
특히 가족은 우리가 가장 많은 시간과 마음을 쓰는 곳입니다. 그런데 그곳에서 반응이 오지 않으면, 마음속에서 이런 식이 만들어집니다.
내가 이만큼 했는데 아무 말이 없다 = 내가 한 일은 별것 아니다 = 나는 별것 아닌 사람이다
세 번째 칸까지 가면 서운함이 아니라 존재의 문제가 됩니다. 그래서 이렇게까지 아픈 겁니다.
가족이 특히 인색한 이유
1. 익숙해지면 안 보입니다
사람의 감각은 변하는 것에 반응하고 늘 있는 것은 배경으로 처리합니다. 매일 있는 밥상은 배경이 되고, 하루 없으면 그때 보입니다. 무심해서가 아니라 감각이 그렇게 만들어져 있습니다.
2. 역할로 묶여 있습니다
“엄마니까”, “아내니까” 하는 틀 안에 들어간 일은 감사의 대상이 아니라 당연한 것으로 분류됩니다. 이 분류는 무의식적으로 일어납니다.
3. 표현을 배운 적이 없습니다
감사를 표현받아본 적 없는 사람은 표현하는 법도 모릅니다. 특히 그렇게 자란 세대에서는 마음이 있어도 말이 안 나옵니다.
인정이 없다는 것이 곧 인정하지 않는다는 뜻은 아닙니다. 대부분은 ‘없는 것’이 아니라 ‘표현되지 않은 것’입니다. 둘은 아주 다릅니다.
더 많이 해도 채워지지 않습니다
인정받고 싶을 때 우리가 흔히 하는 일이 있습니다. 더 잘하는 것입니다. 반찬을 하나 더 만들고, 더 완벽하게 챙깁니다.
그런데 이 방식은 거의 언제나 실패합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기준이 올라가기 때문입니다. 어제 다섯 가지를 했으면 오늘 다섯 가지는 기본이 됩니다. 더 해서 인정받으려는 시도는 인정의 문턱을 계속 높입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억울함이 쌓입니다. 억울함이 쌓이면 어느 날 “내가 이 집에서 뭐야!” 하고 터지는데, 가족은 갑자기 왜 그러는지 모릅니다. 그동안 다 괜찮다고 했으니까요.
그래서 해볼 수 있는 것
1. 요청하기 — 부끄러운 일이 아닙니다
“나 오늘 이거 하느라 좀 힘들었어. 수고했다고 한마디 해줘.”
이렇게 말하면 값이 떨어진다고 느끼실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말해서 받은 인정도 인정입니다. 그리고 몇 번 반복되면 가족은 요청 없이도 하게 됩니다. 표현은 배우는 것이니까요.
2. 보이게 만들기
말없이 다 해놓으면 아무도 모릅니다. 가끔은 과정을 보여주세요. “이거 하는 데 두 시간 걸렸어.” 자랑이 아니라 정보 제공입니다.
3. 나눠주기
내가 다 하지 않는 것이 가장 확실한 방법이기도 합니다. 한 번 해본 사람만이 그 일의 무게를 압니다.
4. 인정의 출처를 여러 곳에 두기
가족 하나에만 걸려 있으면 그 관계가 흔들릴 때 나도 같이 흔들립니다. 나를 인정해주는 자리를 밖에도 만들어두세요. 모임이든 일이든 배움이든요.
5. 스스로 기록하기
하루 끝에 “오늘 내가 한 일” 한 줄을 적어보세요. 남이 안 세어주는 것을 내가 세는 겁니다. 이건 자기 위안이 아니라 사실을 기록하는 일입니다.
마지막으로
가족에게 인정받고 싶은 마음은 욕심이 아닙니다. 오래 애쓴 사람에게 자연스럽게 생기는 마음입니다.
다만 그 마음을 더 잘하기로 풀려고 하면 길이 없습니다. 말하기로 풀어야 길이 생깁니다.
가족 중 누구에게 가장 인정받고 싶은가요?
그 사람에게 오늘 한 문장을 요청한다면 뭐라고 하시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