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창 모임에서 세 시간 동안 듣기만 하고 돌아왔다
내놓을 만한 이야기를 찾다가 결국 아무 말도 못 했습니다. 집에 와서 신발을 벗는데 몸이 무거웠습니다.
그날 있었던 일
오랜만에 동창 모임에 나갔습니다. 열 명쯤 모였고, 이야기는 끊이지 않았습니다. 아이 유학, 남편 승진, 새로 산 집, 다녀온 여행.
저는 웃고 고개를 끄덕이고 “우와” 하고 감탄했습니다. 그리고 세 시간 동안 제 이야기는 거의 하지 않았습니다.
집에 돌아와 현관에서 신발을 벗는데 몸이 무거웠습니다.
그때 제가 느낀 감정
피곤함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습니다. 정확히는 초라함이었습니다.
남들의 이야기를 듣는 동안 저는 계속 속으로 제 삶을 뒤졌습니다. 내놓을 만한 게 있나 하고요. 그런데 마땅한 게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계속 듣기만 했습니다.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
- 나만 제자리인가.
- 다들 저렇게 잘 사는데 나는 뭘 했지.
- 말할 게 없어서 못 한 건데, 사람들은 내가 조용한 성격이라고 생각하겠지.
- 다음엔 안 나가야겠다.
그런데 왜 그렇게 초라했을까
모임에서 오가는 이야기에는 특징이 있습니다. 대부분 결과만 나온다는 것입니다.
아이가 유학 갔다는 이야기는 나오지만, 그 아이가 삼수했다는 이야기는 잘 안 나옵니다. 집을 샀다는 이야기는 나오지만 대출 이자로 잠 못 자는 이야기는 안 나옵니다. 모임은 원래 하이라이트만 모아 트는 자리입니다.
그런데 제 쪽에서는 그 하이라이트를 제 일상 전체와 비교합니다. 남의 가장 좋은 순간과 내 평범한 화요일을 나란히 놓는 셈입니다. 이 비교는 처음부터 공정할 수가 없습니다.
심리학의 눈으로 보면
사람은 자기 상태를 절대적으로 알 방법이 없어서, 주변과 비교해서 가늠합니다. 이것을 사회적 비교라고 합니다. 사회심리학자 리언 페스팅거(Leon Festinger)가 정리한 개념이지요.
비교 자체는 자연스럽습니다. 문제는 방향입니다.
위를 향한 비교 — 나보다 나아 보이는 사람과 비교. 동기가 될 때도 있지만, 이미 지쳐 있을 때는 대체로 자책으로 끝납니다.
아래를 향한 비교 — 위로가 되지만, 남의 불행에 기대는 방식이라 오래가지 않습니다.
중년의 모임이 유난히 힘든 이유가 있습니다. 이 시기에는 비교 항목이 자녀로 옮겨가기 때문입니다. 내가 노력한 결과가 아니라 아이의 결과가 내 성적표처럼 놓입니다. 내 힘으로 어쩔 수 없는 것으로 평가받는 자리는 누구에게나 버겁습니다.
제가 정말 원했던 것
제가 원했던 건 자랑할 거리가 아니었습니다.
내 이야기에도 누가 귀 기울여줬으면.
그런데 그러려면 제가 먼저 말을 꺼냈어야 했습니다. 저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알아봐 주기를 기다렸습니다. 그건 아무도 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다른 방식으로 바라본다면
다음 모임에서 저는 작은 실험을 해봤습니다. 대단한 이야기 말고 사소한 이야기를 꺼내보기로요.
“나 요즘 아침마다 걷는데, 그 시간이 그렇게 좋더라.”
놀랍게도 그 이야기에 사람들이 제일 많이 반응했습니다. 자기도 걷는다는 사람, 무릎이 아파서 못 걷는다는 사람, 어디가 걷기 좋다는 사람. 십오 분쯤 그 이야기가 이어졌습니다.
그때 알았습니다. 모임에서 사람들이 반가워하는 건 대단한 소식이 아니라 같이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이라는 걸요. 성취는 듣는 사람을 관객으로 만들지만, 일상은 사람을 대화로 끌어들입니다.
그리고 하나 더 배웠습니다. 그 자리에서 조용했던 사람이 저 혼자만은 아니었다는 것. 나중에 한 친구가 말하더군요. “나도 그날 할 말이 없더라.”
모임에서 내가 꺼내지 못한 이야기는 무엇이었나요?
그건 정말 시시한 이야기였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