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를 했는데 그냥 지나갔습니다: 엘리베이터 앞 3초가 하루를 흔들 때
아침 여덟 시 반 엘리베이터 앞의 삼 초짜리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날 저녁 설거지를 할 때까지 제 안에 남아 있었습니다.
아침 여덟 시 반 엘리베이터 앞의 삼 초짜리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날 저녁 설거지를 할 때까지 제 안에 남아 있었습니다.
그날 아침, 엘리베이터 앞에서의 3초
목요일 아침 여덟 시 반이었습니다. 장 보러 나가려고 엘리베이터 앞에 서 있었습니다. 같은 라인 열두 층에 사는 분이 복도에서 나오셨습니다. 저보다 두어 살 위쯤 되어 보이는 분인데, 재활용 버리는 날에 몇 번 마주쳐서 인사를 주고받은 사이입니다. 지난달에는 엘리베이터에서 김장 이야기를 한 삼 분쯤 나누기도 했습니다.
제가 고개를 숙이며 말했습니다. “안녕하세요.”
그분은 휴대폰을 보고 있었습니다. 그대로 제 앞을 지나 계단 쪽 문을 열고 내려갔습니다. 저는 숙였던 고개를 들었습니다. 엘리베이터가 도착했고, 혼자 탔습니다. 거울에 제 얼굴이 보였습니다. 손을 어디에 둬야 할지 몰라서 장바구니 끈을 괜히 고쳐 잡았습니다.
정말 아무것도 아닌 일입니다. 삼 초쯤 걸린 일이고요. 그런데 그날 저녁 설거지를 하면서 저는 여전히 그 삼 초를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장을 보는 동안에도 한 번, 점심 먹으면서 한 번, 오후에 빨래 개면서 또 한 번 떠올랐습니다. 세어보니 하루에 예닐곱 번은 그 장면으로 돌아갔던 것 같습니다.
그 순간 내 안에서 올라온 감정들
맨 처음 온 건 민망함이었습니다. 인사는 이미 입 밖으로 나갔는데 받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 말이 공중에 그냥 떠 있는 것 같았습니다. 혼자 인사하고 혼자 서 있는 모습이 제 눈에 보였습니다.
그다음엔 살짝 화가 났습니다. 사람이 인사를 하면 최소한 고개는 끄덕여야 하는 거 아닌가 싶었습니다. 그런데 화는 오래 못 갔습니다. 화를 낼 만한 일이 아니라는 걸 저도 아니까요. 화가 빠지고 나니 그 자리에 다른 게 남았습니다. 제가 없는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이었습니다.
미움받은 게 아닙니다. 미움받으려면 일단 눈에 띄어야 하니까요. 그냥 안 보인 겁니다. 그게 더 이상하게 아팠습니다. 그리고 그 아래에 한 가지가 더 있었습니다. 요즘 저는 어딜 가나 조금씩 덜 보이는 것 같습니다. 가게에서 순서가 밀리고, 젊은 직원이 제 말을 한 번에 못 알아듣고, 모임에서 제 말 위로 다른 말이 지나갑니다. 그날 아침 일은 그 목록에 하나 더 얹힌 것이었습니다.
작은 일이 유독 오래 남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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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구가 없는 일: 큰일에는 따지거나 사과를 받는 등의 마무리가 있지만, 이토록 작은 일은 밖으로 나갈 출구가 없어 마음 안에서만 맴돌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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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리한 설명을 고르는 버릇: 확인할 수 없는 빈칸을 채울 때, “그 사람이 급했나 보다” 대신 “내가 그 정도 사람인가 보다”라며 스스로에게 가장 불리한 채점표를 들이밀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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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한 방울: 그 3초가 특별했던 것이 아니라, 어딜 가나 조금씩 덜 보이고 묵살당하던 날들이 쌓여 마지막 한 방울에 컵이 넘쳐버린 것입니다.
마음을 되찾기 위해 해본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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덜 아픈 설명 골라두기: 진실을 알 수 없는 일에는 내 하루를 지키기 위해 *”그분은 급한 전화를 기다리고 있었다”*처럼 스스로를 보호하는 상냥한 설명을 쥐어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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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를 시험으로 만들지 않기: 인사는 상대방이 주는 점수가 아니라 온전히 내가 건네는 마음이기에, 받아주면 좋고 아니면 그날의 사정으로 가볍게 흘려보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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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가벼운 인사 건네기: 경비 아저씨나 슈퍼 계산원분들처럼 온기를 주고받는 작은 인사를 일상에 심어두어 3초짜리 일에 하루를 통째로 내어주지 않기.
오늘의 마음 질문
사람이 하루에 확인받아야 하는 양은 생각보다 대단한 인정이 아니라, 여기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아보는 아주 작은 신호면 됩니다. 그 신호가 모자랐던 날, 사소한 3초짜리 일에 흔들렸던 마음을 이제는 다정하게 안아주려 합니다.
오늘, 내 마음 한구석을 차지하고 있는 아주 작은 일이 있나요? 그 일에 대해 내가 고른 설명은, 여러 가능성 중 어느 쪽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