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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마음 사건

명절, 열두 명이 먹고 일어난 부엌에 나 혼자 서 있었다

명절, 열두 명이 먹고 일어난 부엌에 나 혼자 서 있었다

설거지가 힘든 게 아니었습니다. 그 일이 아무에게도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이 힘들었습니다.

그날 있었던 일

추석이었습니다. 열두 명이 먹고 일어났습니다. 상을 물리고 부엌으로 들어가는데, 거실에서는 TV 소리와 웃음소리가 났습니다.

저는 고무장갑을 끼고 물을 틀었습니다. 삼십 분쯤 지나 동서가 들어와 “형님, 제가 할게요” 했습니다. 저는 “다 됐어, 앉아 있어” 했습니다.

진심이었을까요. 지금 생각하면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그때 제가 느낀 감정

물소리 속에서 저는 이상하게 혼자였습니다. 사람이 열두 명 있는 집에서요.

억울함도 아니고 화도 아니었습니다. 굳이 말하자면 보이지 않는 사람이 된 기분이었습니다. 이 일은 당연히 되는 일이고, 되게 만드는 사람은 안 보이는.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

  • 왜 아무도 안 들어올까.
  • 내가 안 하면 이 집은 안 돌아가지.
  • 고맙다는 말 한마디가 그렇게 어렵나.
  • 그런데 나는 왜 “앉아 있어”라고 했을까.

그런데 왜 그렇게 서운했을까

설거지가 힘들어서가 아니었습니다. 삼십 분이면 끝나는 일입니다.

힘들었던 건 그 일이 아무에게도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이었습니다. 명절 음식은 준비하는 데 이틀이 걸리고 먹는 데 한 시간이 걸립니다. 그런데 대화에 남는 건 먹은 한 시간입니다.

그리고 하나 더. 저는 도와주겠다는 사람을 돌려보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여기에 오래된 습관이 있습니다. 도움을 받는 것이 부끄러운 사람은 도움을 거절하고, 거절한 뒤에 서운해합니다. 겉으로는 배려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알아서 알아봐 주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그런데 그 바람은 거의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심리학의 눈으로 보면

보이지 않는 노동에는 특징이 있습니다. 잘되면 아무 말이 없고, 안 되면 표시가 납니다. 국이 맛있으면 조용하고, 국이 짜면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런 구조에서 오래 지내면 자연히 인정받지 못한다는 감각이 쌓입니다. 그리고 그 감각은 명절처럼 일이 몰리는 날에 한꺼번에 올라옵니다.

거절과 서운함의 고리

1. 도와주겠다는 말을 듣는다 → 2. “됐어, 앉아 있어” 하고 돌려보낸다 → 3. 아무도 안 온다 → 4. 서운해진다 → 5. 다음에도 말은 안 하고 혼자 한다

이 고리를 끊을 수 있는 지점은 2번뿐입니다. 나머지는 내가 어쩔 수 없는 자리에 있습니다.

제가 정말 원했던 것

이 일을 내가 하고 있다는 걸 누군가 알아줬으면.

설거지를 대신 해달라는 게 아니었습니다. 함께 서 있어 주기를 바랐던 겁니다. 그건 요청하면 되는 일이었는데, 저는 요청 대신 기다림을 골랐습니다.

다른 방식으로 바라본다면

다음 명절에 저는 두 가지를 바꿨습니다.

첫째, “됐어”를 없앴습니다. 동서가 들어왔을 때 “그럼 헹구는 것만 좀 해줄래?” 하고 일을 나눴습니다. 둘이 하니 이십 분 만에 끝났고, 그 이십 분 동안 우리는 꽤 재미있게 떠들었습니다.

둘째, 미리 정했습니다. 상 치우기 전에 “설거지는 남자들이 하기로 하자” 하고 웃으며 말했습니다. 명절 당일 그 자리에서 말하면 분위기가 어색해지지만, 미리 정해두면 규칙이 됩니다.

중요한 건 이겁니다. 사람들은 대체로 나쁜 마음으로 앉아 있는 게 아닙니다. 물어보지 않으면 필요한 줄 모릅니다. 특히 평생 그 일을 해본 적 없는 사람은 정말로 모릅니다.

서운함을 쌓는 대신 한 문장을 꺼내는 것. 그게 생각보다 많은 것을 바꿨습니다.

오늘의 마음 질문

도와주겠다는 말을 돌려보낸 적이 있나요?
그때 내가 정말 바랐던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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