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배가 나를 “선생님”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존중하는 말인데 어딘가 밀려난 느낌이었습니다. 나이 듦은 대개 거울이 아니라 남의 태도에서 먼저 옵니다.
그날 있었던 일
일하는 곳에 새로 들어온 스무 살 어린 후배가 있습니다. 처음엔 “언니”라고 부르더니, 어느 날부터 “선생님”이라고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선생님, 이거 어디에 두면 될까요?”
저는 웃으며 알려줬습니다. 그리고 그날 하루 종일 그 호칭이 귀에 걸렸습니다.
그때 제가 느낀 감정
기분 나쁜 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존중하는 말이니까요. 그런데 어딘가 밀려난 느낌이 들었습니다.
“언니”는 같은 편이라는 말이고, “선생님”은 다른 자리에 있다는 말이었습니다. 저는 그날 처음으로 제가 그 아이들과 다른 세대에 속한다는 걸 남의 입을 통해 들었습니다.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
- 내가 그렇게 나이 들어 보이나.
- 이제 나는 편하게 대하기 어려운 사람이 된 건가.
- 그럼 나는 저 무리에 못 끼는 건가.
- 이런 걸로 마음 쓰는 것도 나이 든 티인가.
그런데 왜 마음이 쓰였을까
호칭은 단순한 부르는 말이 아니라 관계의 위치를 정하는 표시입니다. 그래서 호칭이 바뀌면 관계의 모양이 바뀌었다는 신호가 됩니다.
“언니”에서 “선생님”으로 바뀐 것은 거리가 생긴 게 아니라 거리가 명확해진 것에 가깝습니다. 원래 있던 나이 차이가 말로 드러난 거예요. 그런데 드러나기 전까지 저는 그 차이를 크게 의식하지 않고 지냈습니다.
나이 듦이 힘든 순간은 대개 이렇게 옵니다. 거울을 볼 때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 나를 대하는 방식이 달라졌을 때입니다.
심리학의 눈으로 보면
사람은 자기가 어느 무리에 속하는지로 자기를 설명합니다. 이걸 사회적 정체성이라고 합니다. 헨리 타지펠(Henri Tajfel)이 정리한 개념이지요.
문제는 나이가 들면서 소속이 조용히 바뀐다는 점입니다. 나는 여전히 같은 사람인데, 어느 순간 후배들 무리에서 선배들 무리로 분류됩니다. 그 분류는 내가 하는 게 아니라 남이 합니다. 그래서 준비할 틈이 없습니다.
보이지 않게 되는 느낌 — 대화에서 자연스럽게 빠지고, 뒤풀이에서 먼저 배웅받고, 농담의 대상에서 제외됩니다. 배려에서 나온 행동인데 받는 쪽에서는 소외로 느껴질 수 있습니다.
제가 정말 원했던 것
나는 아직 여기 있는 사람이라는 감각.
“언니”라고 불리고 싶었던 게 아니라, 대화에서 빠지지 않는 사람이고 싶었던 겁니다.
다른 방식으로 바라본다면
“선생님”이라는 호칭을 다시 생각해봤습니다. 그건 배울 게 있다고 인정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그냥 나이가 많다고 그렇게 부르지는 않습니다. 실제로 그 후배는 제게 자주 물어보러 옵니다.
즉 그 호칭은 제가 밀려났다는 표시가 아니라, 제 자리가 바뀌었다는 표시였습니다. 같은 편에서 노는 사람에서, 기댈 수 있는 사람으로요. 나쁜 자리가 아닙니다.
다만 그 자리에는 함정이 하나 있습니다. 어른 대접을 받다 보면 어느새 먼저 다가가지 않게 된다는 것입니다. 후배들이 나를 어려워하니 조심하는 게 맞는 것 같고, 그러다 보면 정말 멀어집니다.
그래서 저는 작은 걸 하나 정했습니다. 점심을 같이 먹자고 제가 먼저 말하기. 나이가 많은 쪽이 먼저 손을 내미는 편이 훨씬 쉽습니다. 어린 쪽에서는 그게 부담이거든요.
호칭은 그대로 “선생님”입니다. 그런데 그 후배와 저는 요즘 꽤 자주 웃습니다.
최근에 내 자리가 바뀌었다고 느낀 순간이 있었나요?
그 새 자리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