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이 먹는 저녁상이 자꾸 남습니다
목요일 저녁, 시금치도 계란말이도 절반이 그대로 남았습니다. 냄비를 작은 걸로 바꾸면 될 일 같았는데 자꾸 다른 마음이 올라왔습니다.
그날 있었던 일
목요일 저녁이었습니다. 시장에서 시금치 두 단을 사 왔습니다. 한 단이면 되는데 두 단을 샀습니다. 파는 아주머니가 “한 단 더 가져가요, 싸게 줄게”라고 했고 저는 별생각 없이 그러라고 했습니다.
집에 와서 시금치를 무치고, 계란말이를 부치고, 된장찌개를 끓였습니다. 냄비는 늘 쓰던 그 냄비였습니다. 아이들 고등학교 다닐 때 사서 이십 년 가까이 쓰는, 바닥이 두꺼운 흰 냄비요.
상을 차려놓고 보니 밥그릇이 둘이었습니다. 남편과 저, 둘이서 먹었습니다. 삼십 분쯤 뒤에 상을 치우는데 시금치가 그대로 남았고, 계란말이도 반이 남았고, 찌개는 냄비의 절반이 남아 있었습니다.
남편이 그릇을 옮겨주면서 말했습니다. “왜 이렇게 많이 했어.”
저는 “그냥 하다 보니까”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리고 반찬통 세 개에 남은 것을 나눠 담아 냉장고에 넣었습니다. 지난주에 담아둔 통 옆에요. 그 통은 아직 열지도 않은 채였습니다. 뚜껑에 붙여둔 종이에 ‘지난주 화’라고 제가 써놓은 글씨가 보였습니다.
냉장고 문을 닫고 잠깐 서 있었습니다. 별일도 아닌데 마음이 이상했습니다. 거실에서는 뉴스 소리가 났고, 저는 부엌 불도 안 끈 채로 한참을 그렇게 있었습니다.
그때 제가 느낀 감정
처음 든 것은 민망함이었습니다. 몇 년째 둘이 먹으면서 아직도 네 사람 분량을 만들고 있다는 게요. 나이 든 사람의 미련해 보이는 습관 같아서 남편 앞에서 조금 부끄러웠습니다.
그다음은 아까움이었습니다. 버리게 될 걸 알면서 또 만들었구나 싶었습니다. 저희 세대는 음식 버리는 걸 죄처럼 배우고 자랐습니다. 그래서 남은 반찬은 그냥 남은 반찬이 아니라 내가 계산을 잘못했다는 증거처럼 남습니다.
그런데 그 아래에 다른 것이 있었습니다. 제 손이 아직 네 사람을 기억하고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머리는 둘인 걸 아는데 손이 모릅니다. 시금치를 씻을 때 한 줌을 더 집고, 계란을 깰 때 하나를 더 깹니다. 이십 년 동안 그렇게 해왔으니까요.
남은 반찬은 음식이 아니라 더 이상 오지 않는 사람들의 자리처럼 보였습니다. 그게 제일 서늘했습니다.
서운함이라고 부르기에는 대상이 없습니다. 아이들이 잘못한 게 없거든요. 각자 자기 자리에서 잘 살고 있고, 그건 제가 그렇게 되라고 이십 년을 애쓴 결과입니다. 그러니까 이건 누구를 원망할 수 없는 종류의 쓸쓸함입니다. 원망할 데가 없는 감정은 갈 곳이 없어서 자꾸 저 자신에게로 돌아옵니다.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
- 둘이 먹는데 왜 아직도 이 양을 하고 있을까.
- 냉장고에 반찬통이 여덟 개인데 먹는 사람은 둘이다.
- 애들이 오면 주려고 만든다는 건 사실 핑계다. 언제 올지 모른다.
- 이제 내 요리는 잘하든 못하든 아무도 평가하지 않는다.
- 내가 하루에 제일 오래 하는 일이 아무도 기다리지 않는 일이 되었구나.
마지막 문장이 제일 아팠습니다. 아무도 그렇게 말한 적이 없는데, 제가 스스로에게 한 말이었습니다.
그런데 왜 이렇게까지 마음이 쓰였을까
반찬이 남은 건 사소한 일입니다. 냄비를 작은 걸로 바꾸면 끝날 일이기도 하고요. 그런데 제 마음이 붙잡은 건 냄비가 아니었습니다.
저에게 밥상의 크기는 오랫동안 제가 돌보는 사람의 수였습니다. 넷을 차리면 넷을 먹였고, 그날 하루 제가 한 일이 그 상 위에 다 보였습니다. 설거지가 많으면 많이 한 날이었고, 반찬이 비면 잘 만든 날이었습니다. 누가 칭찬해주지 않아도 상이 저에게 답을 해줬습니다.
지금은 상이 답을 하지 않습니다. 남은 반찬은 “오늘 네가 한 일은 필요 없었다”라고 말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물론 그건 반찬이 하는 말이 아니라 제가 듣는 말입니다.
생각해보면 저는 오랫동안 제가 한 일의 결과를 눈으로 확인하며 살았습니다. 빨래가 줄고, 도시락통이 비어 오고, 밥솥이 바닥나고. 그 눈에 보이는 확인이 저에게는 일종의 성적표였습니다. 지금은 그 성적표가 계속 빈칸으로 돌아옵니다. 잘한 것도 못한 것도 아닌, 그냥 아무 표시가 없는 상태요. 그런데 사람은 나쁜 평가보다 아무 평가도 없는 상태를 더 견디기 어려워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하나 더. 아이들이 나간 것은 몇 년 전 일인데, 저는 그 일을 한 번에 겪지 않았습니다. 이사 나가던 날 한 번 겪고, 명절에 한 번 겪고, 이렇게 저녁상에서 또 한 번 겪습니다. 큰 상실은 한 번에 오지 않고 작은 장면으로 나눠서 여러 번 옵니다.
그래서 “그건 벌써 몇 년 전 일이잖아”라는 말이 별로 위로가 되지 않습니다. 날짜로는 몇 년 전이 맞지만, 마음으로는 오늘 저녁에 처음 겪은 일이거든요. 다음에는 김장할 때 또 겪을 겁니다. 그 사람이 없는 자리는 그 사람이 있던 모든 장면에서 한 번씩 확인됩니다.
심리학의 눈으로 보면
오래 반복한 행동은 생각을 거치지 않고 나옵니다. 습관은 편해서 좋기도 하지만, 상황이 바뀐 뒤에도 그대로 남아 있어서 우리를 자꾸 옛 자리로 데려다 놓기도 합니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습관에 역할이 붙어 있었다는 점입니다. 밥을 짓는 일은 단순한 가사가 아니라 ‘나는 이 집을 먹이는 사람’이라는 자리였습니다. 그 자리는 몸에 새겨져 있어서, 자리가 없어져도 몸은 계속 그 자리에서 일합니다.
제가 들은 말 — 이제 아무도 내 밥을 기다리지 않는다.
실제로 있는 일 — 손이 아직 예전 양을 기억하고 있다.
이 둘은 다릅니다. 앞의 문장은 제 가치에 대한 판단이고, 뒤의 문장은 그냥 몸의 기억입니다. 저는 몸의 기억을 보고 제 가치를 판단하고 있었습니다. 하나의 사실에 여러 겹의 해석을 얹어놓고, 그중 제일 아픈 해석을 사실이라고 믿는 일. 마음이 가라앉아 있을 때 우리가 흔히 하는 일입니다.
이런 걸 알아차리는 것만으로 감정이 사라지지는 않습니다. 다만 “나는 지금 반찬을 보고 있는 게 아니라, 반찬에 대고 내 쓸모를 묻고 있구나”라고 한 번 정확하게 말해두면, 그 감정이 하루 전체로 번지지는 않더군요.
한 가지 덧붙이면, 이런 순간에 마음이 유난히 가라앉는 데는 시간대도 한몫합니다. 저녁 여덟 시, 하루 일이 끝나고 집이 조용해지는 시각에는 같은 생각도 훨씬 무겁게 내려앉습니다.
제가 정말 원했던 것
남편에게 “왜 이렇게 많이 했어”라는 말을 들었을 때, 저는 그냥 웃었습니다. 그런데 그때 하고 싶었던 말은 따로 있었습니다.
오늘 저녁에 누가 한 명만 더 앉아 있었으면 좋겠어.
많이 만든 게 아니라 많이 만들고 싶었던 것입니다. 제 손은 사람이 그리울 때 요리를 합니다. 전화를 걸어 “밥 먹으러 와”라고 말하는 대신 재료를 더 삽니다. 그러면 적어도 냉장고에는 누군가를 기다린 흔적이 남으니까요.
그 말을 소리 내어 하기가 어렵습니다. 외롭다고 말하면 아이들에게 짐이 될 것 같고, 남편에게는 “당신으로는 부족하다”는 말로 들릴 것 같아서요. 그래서 대신 장을 봅니다. 시금치 두 단은 그러니까 초대장이었습니다. 부치지 못한 초대장이요.
다른 방식으로 바라본다면
남편의 “왜 이렇게 많이 했어”를 다시 생각해 봤습니다. 핀잔처럼 들었는데, 그 사람도 매일 남는 반찬을 보고 있었던 겁니다. 어쩌면 그 사람 나름대로 “당신 힘들게 그렇게 안 해도 돼”라고 말한 것일 수도 있고요. 저희는 같은 식탁에 앉아서 각자 다른 빈자리를 보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아이들 쪽에서 보면 또 다릅니다. 아이들에게 집은 이제 ‘가는 곳’이지 ‘있는 곳’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저를 덜 생각하는 건 아닐 겁니다. 저도 제 친정어머니께 그랬으니까요. 어머니가 반찬을 싸주시면 무겁다고 하면서도 다 받아 왔고, 그게 어머니에게 무슨 뜻이었는지는 제가 이 나이가 되어서야 압니다.
그래서 저는 두 가지를 바꿔봤습니다.
첫째, 냄비를 작은 것으로 바꿨습니다. 큰 냄비는 위 칸에 올려두었습니다. 손이 기억한다면 손이 닿는 자리를 바꾸면 됩니다. 의지로 고치는 것보다 이게 쉬웠습니다.
둘째, 한 달에 한 번은 일부러 크게 합니다. 날을 정해두고 아이들에게 미리 문자를 보냅니다. “이번 달 셋째 주 토요일에 갈비찜 할 건데 올 사람.” 못 오는 달도 있습니다. 그래도 이건 남은 반찬과 다릅니다. 기다림에 날짜가 있으면 마음이 훨씬 덜 흔들립니다. 막연히 기다리는 것과 정해놓고 기다리는 것은 같은 기다림이 아니더군요.
셋째, 남편에게 한 번 말해봤습니다. “나 아직도 손이 네 명 분을 하네.” 남편은 웃으면서 “나도 회사 그만두고 한동안 새벽에 눈이 떠졌어”라고 했습니다. 대단한 위로는 아니었는데, 그 말을 듣고 나니 남은 반찬이 조금 덜 무거워졌습니다. 저만 옛 습관을 데리고 사는 게 아니었으니까요.
그리고 남은 반찬을 대하는 태도도 조금 바꿨습니다. 예전에는 억지로 다 먹거나 미련하게 두었다가 결국 버렸습니다. 지금은 다음 날 점심에 먹을 만큼만 남기고 나머지는 그날 정리합니다. 버리면서 죄책감이 들면 속으로 한마디 합니다. “오늘은 좀 많이 했네.” 그게 다입니다. 그 이상의 의미를 붙이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러고 나니 알겠더군요. 제가 줄여야 했던 건 밥의 양이 아니라, 말하지 못한 채로 상 위에 올려두는 마음의 양이었습니다. 그 마음은 냉장고에 넣어두면 상하지만, 입 밖으로 꺼내면 의외로 잘 전해집니다.
요즘 내 손이 아직 기억하고 있는 옛 습관은 무엇인가요?
그 습관이 대신 말해주고 있는 마음은 뭘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