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검진 결과지를 받아 들고 한참 서 있었습니다
결과지 아래쪽에 재검이라는 두 글자가 있었습니다. 큰 건 아니라고 했는데 그 한 줄이 이 주 동안 제 밤을 바꿔놓았습니다.
그날 있었던 일
지난주 수요일 오후에 우편함에서 봉투를 꺼냈습니다. 건강검진 결과지였습니다. 검진받은 지 삼 주쯤 됐는데 잊고 있었습니다.
부엌 식탁에 서서 봉투를 뜯었습니다. 앉지도 않고요. 종이가 여러 장이었고 대부분은 익숙한 말들이었습니다. 정상, 정상, 경계, 정상. 매년 보던 그대로였습니다.
그러다 아래쪽 소견란에서 한 줄을 봤습니다. 다시 한번 확인이 필요하다는 내용의 짧은 문장이었습니다. 검사 항목 이름 옆에 재검이라는 두 글자가 붙어 있었습니다.
병원에 전화를 걸었습니다. 간호사분이 친절하게 설명해 주셨습니다. “크게 걱정하실 건 아니고요, 한 번 더 보자는 겁니다. 흔히 있는 일이에요.”
저는 “네, 알겠습니다” 하고 예약을 잡았습니다. 이 주 뒤 목요일 오전 아홉 시 반. 달력에 동그라미를 쳤습니다.
전화를 끊고 나서 결과지를 다시 봤습니다. 이미 아는 내용인데 처음부터 다시 읽었습니다. 정상이라고 적힌 줄들은 눈에 들어오지 않고 그 한 줄만 자꾸 커 보였습니다.
그러고는 냉장고 옆에 서서 한참을 그러고 있었습니다. 다리가 아파서 그제야 식탁 의자에 앉았습니다. 결과지는 접어서 서랍에 넣었는데, 그날 저녁에 두 번 더 꺼내 봤습니다.
그때 제가 느낀 감정
이상하게도 그 순간에는 아무렇지 않았습니다. 간호사분이 괜찮다고 했으니 괜찮은 거지, 하고 넘겼습니다. 저녁도 평소대로 차렸고 드라마도 봤습니다.
그런데 밤에 왔습니다. 열두 시가 넘어 불을 끄고 누웠는데, 낮에 봤던 그 두 글자가 천장에 떠 있는 것 같았습니다. 몸 어딘가가 갑자기 신경 쓰이기 시작했습니다. 원래 있던 결림이었는데 그날은 다르게 느껴졌습니다.
제일 위에 있던 감정은 두려움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두려움은 뭐가 무섭다고 딱 집어 말할 수가 없는 종류였습니다. 아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으니까요.
두려움 아래에는 부끄러움 비슷한 게 있었습니다. 별거 아니라는데 이러고 있는 내가 유난스럽다는 마음이요. 저희 어머니 세대는 아파도 티를 안 내는 걸 미덕으로 여겼습니다. 저도 그렇게 배웠습니다. 그래서 무섭다는 감정이 올라오면 그 감정 자체를 흠처럼 여기게 됩니다.
그리고 그 아래에 외로움이 있었습니다. 이걸 누구한테 말하나 싶었습니다. 남편에게 말하면 별일 아닌 걸 크게 만드는 것 같고, 아이들에게 말하면 걱정을 얹는 것 같고, 친구에게 말하면 소문이 나는 것 같았습니다. 말하지 못하는 걱정은 밤에 혼자 커집니다.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
- 흔한 일이라고 했으니 흔한 일일 것이다.
- 그런데 흔한 일이면 왜 굳이 다시 오라고 할까.
- 이 주라는 시간은 왜 이렇게 길게 잡았을까.
- 아이들에게 지금 말하면 괜히 걱정만 시킬 텐데, 나중에 뭔가 나오면 왜 진작 말 안 했냐고 할 텐데.
- 나는 이제 아플 수도 있는 나이가 되었구나.
마지막 문장이 제일 아팠습니다. 결과지에는 그런 말이 한 줄도 없었습니다. 제가 쓴 문장입니다.
그런데 왜 이렇게까지 마음이 쓰였을까
재검이라는 말은 나쁜 소식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좋은 소식도 아닙니다. 그건 아직 아무것도 아닌 상태입니다. 그래서 더 어렵습니다.
나쁜 소식에는 할 일이 있습니다. 알아보고, 준비하고, 사람들에게 말하고, 마음을 먹습니다. 좋은 소식에는 안심이 있습니다. 그런데 재검에는 할 일도 안심도 없습니다. 있는 건 이 주라는 빈 시간뿐입니다.
사람의 마음은 빈칸을 그냥 두지 못합니다. 답이 정해지지 않은 자리에 무언가를 채워 넣는데, 대개 밤에 채우고, 밤에는 나쁜 쪽으로 채웁니다. 그러다 보니 이 주 동안 저는 아직 오지도 않은 결과를 여러 번 미리 받았습니다.
재미있는 건 제가 그 이 주 동안 실제로 아프지 않았다는 겁니다. 몸은 검진받던 날과 똑같았습니다. 달라진 건 종이 한 장과 거기 적힌 두 글자뿐인데, 그 두 글자가 제 하루의 모양을 바꿔놨습니다. 사건이 마음을 흔든 게 아니라 단어가 마음을 흔든 셈입니다.
또 하나. 이 나이의 저에게 몸은 오랫동안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아프면 나았고, 무리하면 며칠 쉬면 됐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몸이 조건부가 되었습니다. 재검이라는 단어가 건드린 건 검사 결과가 아니라 그 감각이었습니다. 내 몸이 앞으로도 계속 내 편일 거라고 믿어온 시간이 끝나가고 있다는 감각이요.
그리고 솔직히 말하면, 제가 무서웠던 건 병 자체보다 그 뒤에 딸려 오는 것들이었습니다. 누가 나를 돌봐야 하나. 아이들 일정을 얼마나 어지럽히게 되나. 남편 혼자 두면 어떡하나. 저는 아픈 사람이 되는 것보다 짐이 되는 것을 더 무서워하고 있었습니다.
심리학의 눈으로 보면
결론이 나지 않은 상태를 유난히 힘들어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나쁜 결과가 확정된 상황보다 결과를 기다리는 며칠을 더 괴로워합니다. 차라리 알려주면 견디겠는데 모르는 채로 있는 게 안 된다고요.
이건 성격이 약해서가 아닙니다. 마음은 앞일을 예측해서 대비하려는 쪽으로 작동하는데, 예측할 재료가 없으면 있는 재료로 만들어 씁니다. 그 재료가 대부분 두려움이라서 문제일 뿐입니다.
사실 — 한 항목을 한 번 더 확인한다.
마음이 만든 것 — 결과를 미리 여러 번 받아본다. 그때마다 감정은 실제처럼 소모된다.
여기에 몸의 감각이 더해집니다. 걱정이 시작되면 우리는 평소에 신경 쓰지 않던 신호에 귀를 기울이게 됩니다. 원래 있던 결림, 원래 있던 피로가 갑자기 의미를 가진 것처럼 느껴집니다. 몸이 나빠진 게 아니라 주의가 몸 쪽으로 옮겨 간 것인데, 그 차이를 알아채기가 참 어렵습니다.
인터넷 검색은 이 과정을 몇 배로 만듭니다. 저도 이틀째 밤에 한 시간쯤 검색을 했는데, 그날이 그 이 주 중에 제일 힘든 밤이었습니다. 검색창은 확률을 알려주지 않고 가장 무서운 경우를 제일 먼저 보여줍니다.
제가 정말 원했던 것
남편에게 결과지 이야기를 안 한 채로 사흘이 지났습니다. 별일 아니라고 생각해서가 아니라, 말을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몰라서였습니다. 그때 제가 하고 싶었던 말은 이거였습니다.
별거 아닌 거 아는데, 그래도 나 좀 무서워.
저는 이 문장을 잘 못 합니다. 무섭다고 말하면 상대가 무언가를 해줘야 할 것 같고, 저는 오랫동안 해주는 쪽이었으니까요. 집에서 걱정을 담당하는 사람은 저였고, 걱정을 받는 사람은 다른 식구들이었습니다. 그 자리를 바꾸는 게 어색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원한 건 해결이 아니었습니다. 누가 옆에서 “무섭겠다”라고 한 번 말해주는 것이었습니다. 그거면 됐습니다.
사실 “괜찮을 거야”라는 말은 별로 도움이 안 됩니다. 그 사람도 모르는 일이니까요. 오히려 그 말을 들으면 제 걱정이 근거 없는 것으로 취급받는 기분이 듭니다. 걱정을 없애주려는 말보다 걱정하고 있다는 걸 알아주는 말이 훨씬 편합니다.
다른 방식으로 바라본다면
나흘째 되는 날 남편에게 말했습니다. 길게 말하지 않고 결과지를 식탁에 놓으면서 “이거 한 번 더 보러 가야 한대. 목요일 아홉 시 반”이라고만 했습니다.
남편은 종이를 한참 보더니 “같이 가자”라고 했습니다. 그 말을 듣고 마음이 반쯤 내려앉았습니다. 사흘 동안 혼자 들고 있던 걸 그제야 내려놓은 겁니다. 진작 말할걸 싶었습니다.
아이들에게는 검사를 받고 난 뒤에 말하기로 정했습니다. 숨기려는 게 아니라 순서의 문제라고 생각했습니다. 아직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은 걱정을 나눠 갖는 건, 저에게는 덜어내는 일이지만 아이들에게는 새로 짊어지는 일이 될 수 있으니까요. 이건 옳고 그름이 아니라 각자 정하기 나름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관점 하나를 바꿔봤습니다. 재검 통보를 받았다는 건 누가 나를 제대로 들여다보고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아무도 안 보고 있으면 재검도 없습니다. 넘어가지 않고 한 번 더 확인하자는 건 나쁜 신호라기보다 꼼꼼한 신호에 가깝습니다.
남은 열흘 동안 저는 세 가지를 정해뒀습니다.
첫째, 검색하지 않기. 궁금한 게 생기면 종이에 적어뒀다가 진료 때 의사에게 직접 묻기로 했습니다. 실제로 다섯 가지를 적었고, 그날 세 가지를 물었습니다.
둘째, 그날까지의 일정을 평소대로 채워두기. 비워두면 그 자리에 걱정이 들어옵니다. 수영도 그대로 갔고 친구 약속도 취소하지 않았습니다.
셋째, 걱정하는 시간을 따로 정하기. 저녁 먹고 십 분 동안은 마음껏 걱정합니다. 그 시간 외에 떠오르면 “저녁에 하자”라고 미룹니다. 처음엔 유치해 보였는데 생각보다 도움이 됐습니다. 걱정을 없애려 하면 더 커지지만, 자리를 만들어주면 그 자리에 머무는 편이더군요.
이 주가 지나 병원에 다녀왔습니다. 결과가 어땠는지는 여기 쓰지 않겠습니다. 이 글은 그 결과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결과를 기다리던 이 주에 대한 이야기니까요. 그 이 주는 결과와 상관없이 제가 실제로 살아낸 시간이었고, 그 시간이 힘들었다는 것도 결과와 상관없이 사실입니다.
다만 이런 상태가 몇 주씩 이어지면서 잠이 계속 무너지거나 일상이 잘 굴러가지 않는다면, 그건 참고 넘길 일이 아니라 한 번쯤 상담을 받아볼 만한 일입니다. 몸을 확인하러 가는 것처럼 마음도 확인하러 갈 수 있습니다.
지금 내가 혼자 들고 있는 ‘아직 아무것도 아닌 걱정’이 있나요?
그걸 한 사람에게만 말한다면 누구에게 말하시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