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이 결혼 이야기를 아빠에게 먼저 했다
기쁜 소식인데 기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런 감정을 느끼는 제가 부끄러웠습니다.
그날 있었던 일
남편이 저녁을 먹다가 지나가듯 말했습니다. “지현이가 내년 봄쯤 결혼 생각한다더라.”
저는 숟가락을 든 채로 물었습니다. “언제 들었어?” “지난주에 전화 왔었어.”
지난주. 저는 그 주에 딸과 두 번 통화했습니다. 그런데 그 이야기는 없었습니다.
그때 제가 느낀 감정
기쁜 소식이었는데 기쁘지 않았습니다. 먼저 온 건 배신감 비슷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곧바로 그런 감정을 느끼는 제가 부끄러웠습니다.
딸의 결혼 소식에 서운함이 먼저 오는 엄마라니. 그날 저는 그 부끄러움 때문에 아무에게도 이 이야기를 못 했습니다.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
- 왜 아빠한테 먼저 말했을까.
- 내가 반대할 거라고 생각했나.
- 내가 뭐라고 할까 봐 미리 겁먹은 걸까.
- 이 아이 인생의 중요한 순간에 나는 두 번째구나.
그런데 왜 이렇게 서운했을까
서운함의 크기는 대개 기대의 크기와 같습니다. 저는 제가 그 소식을 가장 먼저 들을 사람이라고 당연하게 여기고 있었습니다. 한 번도 의심해본 적 없는 전제였지요.
그 전제가 깨지자, 깨진 것은 소식의 순서가 아니라 제가 그 아이 삶에서 차지한다고 믿었던 자리였습니다.
그리고 여기에 하나가 더 겹칩니다. 딸의 결혼은 기쁜 일인 동시에 떠나보내는 일입니다. 그 상실감이 이미 마음 밑에 깔려 있었는데, “아빠한테 먼저”라는 사실이 그걸 건드린 것입니다.
심리학의 눈으로 보면
가족 안에서 누가 누구에게 먼저 말하는가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대개 가장 반응이 예측 가능한 사람에게 먼저 말합니다.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라요.
반응이 크지 않을 것 같은 사람 · 질문을 적게 할 것 같은 사람 · 판단하지 않을 것 같은 사람 · 다른 가족에게 대신 전해줄 수 있는 사람
제 남편은 말수가 적습니다. 소식을 들으면 “그래” 하고 넘깁니다. 딸 입장에서는 가장 부담 없는 통로였을 겁니다.
반대로 저는 질문이 많습니다. 어떤 사람이냐, 부모는 뭐 하시냐, 집은 어떻게 하냐. 그 질문들은 사랑에서 나오지만, 받는 쪽에서는 준비가 필요한 대화가 됩니다. 그래서 마음이 정리될 때까지 미룹니다.
즉 나중에 들었다는 건 덜 사랑받아서가 아니라, 더 큰 대화를 예상하기 때문인 경우가 많습니다.
제가 정말 원했던 것
네 인생의 큰일에 내가 아직 가까운 사람이라는 확인.
순서는 그 확인을 재는 자였을 뿐입니다. 자가 틀렸다고 관계가 틀린 건 아니었습니다.
다른 방식으로 바라본다면
며칠 뒤 딸이 전화를 걸어 직접 이야기했습니다. 저는 “아빠한테 먼저 들었어”라는 말을 삼키고 이렇게만 말했습니다.
“축하해. 좋은 사람이야?”
딸은 한 시간 넘게 이야기했습니다. 어떻게 만났는지, 어떤 점이 좋은지, 걱정되는 건 뭔지. 저는 거의 듣기만 했습니다. 전화를 끊고 나니 서운함이 많이 옅어져 있었습니다.
그때 알았습니다. 제가 원한 건 첫 번째로 아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듣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제대로 듣는 자리는 순서와 상관없이 만들 수 있었습니다.
나중에 딸에게 슬쩍 물어봤습니다. 왜 아빠한테 먼저 말했냐고요. 대답은 이랬습니다. “엄마한테 말하면 진짜가 되는 느낌이라 좀 무서웠어.”
저는 그 말이 오래 남았습니다. 서운할 일이 아니었습니다.
가족 안에서 나는 어떤 반응을 하는 사람인가요?
사람들이 나에게 말하기를 미루는 이유가 있다면 무엇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