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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마음 사건

엄마가 같은 얘기를 세 번째 하신다 — 나는 왜 짜증이 났을까

엄마가 같은 얘기를 세 번째 하신다 — 나는 왜 짜증이 났을까

“그거 아까 했잖아.” 말이 나가는 순간 후회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짜증 낸 대상은 엄마가 아니었습니다.

그날 있었던 일

친정에 다녀오는 길이었습니다. 엄마가 그날 같은 이야기를 세 번 했습니다. 앞집 아주머니가 어디가 아프다는 이야기였는데, 세 번째로 시작하실 때 저도 모르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엄마, 그거 아까 했잖아.”

엄마는 잠깐 멈추셨다가 “그랬나” 하시고는 화제를 바꾸셨습니다. 그 짧은 정적이 오래 남았습니다.

그때 제가 느낀 감정

말이 입에서 나가는 순간 이미 후회했습니다. 그런데 후회보다 먼저 온 건 짜증이었습니다. 그 짜증이 어디서 왔는지 몰라서 더 불편했습니다.

집에 돌아오는 차 안에서 눈물이 났습니다. 그때 알았습니다. 제가 짜증 낸 대상은 엄마가 아니었습니다.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

  • 왜 자꾸 같은 말을 하실까.
  • 혹시 어디 문제가 있으신 건 아닐까.
  • 내가 왜 그렇게 말했지. 그냥 들어드리면 되는데.
  • 엄마가 늙고 있다는 걸 나는 왜 이렇게 못 견딜까.

그런데 왜 그렇게 짜증이 났을까

같은 이야기를 세 번 듣는 게 힘든 일은 아닙니다. 십 분이면 지나가는 일이에요. 제가 힘들었던 건 그 반복이 가리키는 다른 사실이었습니다.

엄마가 예전 같지 않다는 것. 그리고 이 방향은 되돌아오지 않는다는 것.

사람은 감당하기 어려운 사실을 마주하면 종종 엉뚱한 감정으로 반응합니다. 슬픔을 슬픔으로 느끼려면 그 사실을 인정해야 하는데, 인정할 준비가 안 되어 있으면 마음은 더 다루기 쉬운 감정을 꺼냅니다. 짜증은 슬픔보다 다루기 쉽습니다. 방향이 밖으로 향하니까요.

심리학의 눈으로 보면

이런 상실을 예상 애도(anticipatory grief)라고 부릅니다. 아직 잃지 않았는데 미리 시작되는 슬픔이지요. 부모의 노화를 지켜보는 자녀에게 아주 흔하게 나타납니다.

예상 애도에서 자주 보이는 것

사소한 일에 유난히 예민해집니다 · 부모에게 짜증을 낸 뒤 심하게 자책합니다 · 만나고 오면 이유 없이 지칩니다 · “잘해드려야 하는데”라는 압박이 커집니다

여기서 중요한 건, 이게 사랑이 부족해서 생기는 반응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오히려 반대에 가깝습니다. 상관없는 사람의 노화에는 이런 감정이 올라오지 않습니다.

한 가지 덧붙이면, 반복해서 말하는 것 자체는 나이가 들면 흔히 나타나는 변화이기도 합니다. 다만 방금 한 일을 통째로 잊거나, 익숙한 길을 헤매거나, 날짜와 계절을 자주 혼동하는 일이 겹친다면 그건 다른 신호일 수 있습니다. 걱정만 하고 계시기보다 병원에서 한 번 확인해 보시는 편이 마음이 편합니다.

제가 정말 원했던 것

제가 그 말을 한 진짜 이유는 이거였던 것 같습니다.

엄마, 그러지 마. 예전처럼 있어줘.

말도 안 되는 부탁입니다. 그런데 마음은 종종 말이 안 되는 부탁을 합니다.

다른 방식으로 바라본다면

노인이 같은 이야기를 반복하는 데는 기억의 문제만 있는 게 아닙니다. 그 이야기가 지금 그분에게 중요하기 때문인 경우가 많습니다. 앞집 아주머니가 아프다는 이야기는, 사실 “나도 언제 그렇게 될지 모른다”는 이야기였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니 대답이 달라졌습니다. “그거 아까 했잖아” 대신 이렇게요.

“그러게, 엄마도 걱정되지?”

이 한마디에 엄마는 한참 말씀을 하셨습니다. 반복되는 이야기 밑에 있던 진짜 이야기였습니다.

그리고 저 자신에게도 한 가지를 허락하기로 했습니다. 지치는 게 당연하다는 것. 부모를 사랑하는 것과 부모를 돌보며 지치는 것은 같이 있을 수 있는 일입니다. 지친다고 해서 나쁜 자식이 되는 게 아닙니다.

오늘의 마음 질문

부모님께 짜증이 났던 순간을 떠올려 보세요.
그 짜증 아래에는 어떤 두려움이 있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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